가볍고느리게
사랑합니다. 본문
2012년 10월 1일 오후 5시.... 귀천(歸天)
내게는 아버지 같았고 친구 같았고, 마을 앞 느티나무처럼
언제나 그 자리에 서 있을 것만 같은 분이었다.
정규 교육을 받은 바 없었지만,
누구보다 먹향이 어울리는 선비 같은 당신이었고,
그럼에도 조카들과 일가 친척 어느 누구하나 빠짐없이 챙기시던
따뜻한 햇살이었고, 시원한 그늘이었다.
80년을 넘어 살아 온 인생동안 대가족의 맏이로서,
종가집의 종손으로서 마음을 잊지 않으셨던 분이었고
1년에도 수십번씩 이어지는 제사와 일가의 가정사에도
그 따뜻한 마음을 나눠주길 서슴치 않으셨다.
그냥 생각만 해도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물이 나는,
나의 큰아버지가 귀천하셨다.
치료를 위해 서울로 가시고 겨우 찾아 뵌 지난 8월에...
무섭게 이어진 뇌 방사선치료에 무너져버린 기억과 사고 속에서도
두어시간을 못난 조카의 이름을 생각해내려 힘 쓰더니,
기여이 현관문을 나서는 조카의 손을 잡고 '민화야...' 부르셨던 분이셨다.
큰 아버지의 자리...
큰 집에 가면 늘 저 책상 앞에 서 계셨다. 그림도 그렸고 글씨도 썼다.
당신이 그린 그림은 조카들에게도 당신 동생들의 집에도 가득한데..
당신만 안 계신다.
어느해 여름.
더위 먹지말라며 십수명의 조카들까지 챙겨 손수 만든 부채를 돌렸다.
그 부채속의 글처럼 천년을 푸른 소나무처럼 그 자리에 계실 것만 같았다.
7형제의 맏며느리로, 종가집의 종부로 시집와 70년 가까이 함께 한 큰 어머니가
마지막 길을 떠나는 당신을 붙들고 우신다.
당신 혼자 갈 수 없다고...
당신이 방사선 치료로 기억을 잃고 말을 잃어 버리고 침대에 누웠을때도
큰어머니는 늘 귀에 대고 노래를 부르곤 하셨다.
'천년이 지나 다시 태어난다하여도 당신과 살겠노라...'
그렇게 깊은 정으로 평생을 한결 같이 사셨던 두분이 이제 헤어졌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