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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한일상,소소한감정

사랑합니다.

soeasy 2012. 10. 22. 18:28

 2012년 10월 1일 오후 5시.... 귀천(歸天)

 

내게는 아버지 같았고 친구 같았고, 마을 앞 느티나무처럼 

언제나 그 자리에 서 있을 것만 같은 분이었다. 

정규 교육을 받은 바 없었지만, 

누구보다 먹향이 어울리는 선비 같은 당신이었고, 

그럼에도 조카들과 일가 친척 어느 누구하나 빠짐없이 챙기시던 

따뜻한 햇살이었고, 시원한 그늘이었다. 

 

80년을 넘어 살아 온 인생동안 대가족의 맏이로서, 

종가집의 종손으로서 마음을 잊지 않으셨던 분이었고 

1년에도 수십번씩 이어지는 제사와 일가의 가정사에도 

그 따뜻한 마음을 나눠주길 서슴치 않으셨다.  

 

그냥 생각만 해도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물이 나는, 

나의 큰아버지가  귀천하셨다.

 

 

치료를 위해 서울로 가시고 겨우 찾아 뵌 지난 8월에...

 

무섭게 이어진 뇌 방사선치료에 무너져버린 기억과 사고 속에서도

두어시간을  못난 조카의 이름을 생각해내려 힘 쓰더니, 

기여이 현관문을 나서는 조카의 손을 잡고 '민화야...' 부르셨던 분이셨다. 

 

 

 

 

큰 아버지의 자리...

 

큰 집에 가면 늘 저 책상 앞에 서 계셨다. 그림도 그렸고 글씨도 썼다.

당신이 그린 그림은 조카들에게도 당신 동생들의 집에도 가득한데..

 

당신만 안 계신다.

 

 

 

어느해 여름. 


더위 먹지말라며 십수명의 조카들까지 챙겨 손수 만든 부채를 돌렸다. 

그 부채속의 글처럼 천년을 푸른 소나무처럼 그 자리에 계실 것만 같았다. 

 

 

 

7형제의 맏며느리로, 종가집의 종부로 시집와 70년 가까이 함께 한 큰 어머니가 

마지막 길을 떠나는 당신을 붙들고 우신다.


당신 혼자 갈 수 없다고... 


당신이 방사선 치료로 기억을 잃고 말을 잃어 버리고 침대에 누웠을때도 

 큰어머니는 늘 귀에 대고 노래를 부르곤 하셨다.


'천년이 지나 다시 태어난다하여도 당신과 살겠노라...' 


그렇게 깊은 정으로 평생을 한결 같이 사셨던  두분이 이제 헤어졌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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