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고느리게
통영 가는 길 본문
햇살이 참 좋은 날이었죠? 통영 거쳐 거제로 오가는 길, 운전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햇살에 몸을 맞기고 졸음과 사투(?)를 벌이진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 ^^
우리차에서는 마산을 거쳐 고성과 통영을 지나 거제로 향하며, 통영에 얽힌 사랑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여서인지 다들 다시 눈을 떠더군요 ㅎㅎ
띄엄띄엄 이야기 했었는데.. 다시 한번 정리해볼까요. 혹시라도 통영을 향하며 시 한 수 정도, 아님 첫사랑을 그리워하는 시인의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눌 수 있다면 긴 여행길 졸린 기운을 깨울 수 있을지도 ... ^^
그 이야기, 첫사랑의 주인공은 '백석'이라는 시인입니다. 1912년생이니 꽤 오래전 인물이죠. 원래 평안북도 사람이었고 남북으로 갈려진 이 후 고향으로 돌아가 생을 마친 사람이기에, 북으로 돌아간 시인의 이야기는 금기시 되어 그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는 김소월이 나온 오산학교 후배여서 그런지 시인으로서의 감성이 무척이나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선배인 김소월 시인을 가장 존경하는 사람으로 꼽기도 했구요. 나중에 영문학을 전공하고 경성에서 신문기자 생활도 했고, 여고에서 영어선생님도 했던 사람입니다.
1930년대 사진인데도 한창 멋쟁이죠? 경성 최고의 '모던보이' 중 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런 그의 첫사랑이 바로 통영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백석이 경성에서 근무할때, 그의 가장 친한 친구(신현중)의 누나가 다니던 학교의 학생이었죠. 스물넷의 시인은 고등학생인 18살의 그녀에게 첫 눈에 반하게 됩니다. 그리고서는 평안북도의 고향에서 그녀의 고향인 통영까지의 먼 길을 세번이나 오가며 혼자 짝사랑하며 애만 태우게 됩니다.
하지만 그렇게 짝사랑하던 그녀는 백석이 아닌, 그의 짝사랑을 도와주던 가장 친한 친구 신현중과 결혼을 하게 되죠.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그때도 정석이었나봅니다. ^^;
어쨌거나 그녀를 짝사랑하던 그는, 먼길을 오가며 마산과 고성, 통영에 대한 아름다운 여러편의 시를 남기게 됩니다.
날엔 統制使가 있었다는 낡은港口의 처녀들에겐 녯날이가지 않은 千姬라는 이름이 많다
미억오리 같이 말라서 굴껍지처럼 말없이 사랑하다죽는다는
이 千姬의 하나를 나는 어늬 오랜客主집의 생선가시가 있는 마루방에서 맞났다
저문 六月의 바다가에선 조개도 울을 저녁 소라방등이 붉으레한 마당에 김냄새나는 비가 날였다
-<統營>
이 시에서처럼.. 시인은 처음 만난 그녀에 대한 떨리는 마음을 읊었죠,
집집이 아이 만한 피도 안간 대구를 말리는곳
황화장 사령감이 일본말을 잘도하는곳
처녀들은 모두 漁場主한테 시집을가고싶허 한다는곳
山넘어로가는길 돌각담에 갸웃하는 처녀는 錦이라든이갓고
내가들은 馬山客主집의 어린딸은 蘭이라든이갓고
蘭이라는 이는 明井골에산다는데
明井골은 山을넘어 冬栢나무푸르른 甘露가튼 물이솟는 明井샘이잇는 마을인데
샘터엔 오구작작 물을깃는처녀며 새악시들 가운데 내가조아하는 그이가 잇슬것만갓고
내가조아하는 그이는 푸른가지붉게붉게 冬栢꽃 피는철엔 타관시집을 갈것만가튼데
긴토시끼고 큰머리언고 오불고불 넘앳거리로가는 女人은 平安道서오신듯한데 冬栢꼿피는철이 그언제요
넷 장수모신 날근사당의 돌층게에 주저안저서 나는 이저녁 울듯울듯 閑山島바다에 뱃사공이 되여가며
녕나즌집 담나즌집 마당만노픈집에서 열나흘달을업고 손방아만찟는 내사람을 생각한다.
- <統營>
두번째 통영으로 그녀를 만나러 갔지만 길이 엇갈려 만나지 못하고 돌아오며 쓴 시입니다. ^^
(여기의 '란'이 바로 그가 짝사랑하던 여인이죠)
통영장 낫대들었다
갓 한닙쓰고 건시 한접사고 흥공 단단기 한감 끈코 술한병 바더들고
화륜선 만저보려 선창갓다
오다 가수내 들어가는 주막압헤
문둥이 품바타령 듯다가
열닐헤달이 올라서
나룻배타고 판데목 지나간다 간다
- <統營>
세번째 혼자 그녀를 찾아 떠났던 길에서도 그는 첫사랑의 그녀에 대해 희망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나봅니다. 이 시는 세번째 쓴 통영에 대한 시죠
그리고 그녀가 가장 친한 친구였던 신현중과 결혼한다는 소리를 듣고 실연에 빠진 그는 혼자 다시 통영을 찾아갑니다.(신현중은 원래 약혼녀가 있었지만 파혼하고 백석이 짝사랑하던 그녀와 결혼을 합니다.)
그렇게 상처를 입은 시인은 통영으로 향한 여행길에서 아래와 같은 시들을 남기죠.
<바다>
바닷가에 왔드니
바다와 같이 당신이 생각만 나는구려
바다와 같이 당신을 사랑하고만 싶구려
구붓하고 모래톱을 오르면
당신이 앞선 것만 같구려
당신이 뒤선 것만 같구려
그리고 지중지중 물가를 거닐면
당신이 이야기를 하는 것만 같구려
당신이 이야기를 끊는 것만 같구려
바닷가는
개지꽃이 개지 아니 나오고
고기비눌에 하이얀 햇볕만 쇠리쇠리하야
어쩐지 쓸쓸만 하구려 섧기만 하구려
샛파란 피ㅅ대를 바라보며 나는 가난한 아버지를 가진것과
내가 오래 그려오든 처녀가 시집을간것과
그렇게도 살틀하든 동무가 나를 벌인일을 생각한다
- <내가 생각하는 것은> 가운데서.
이길이다
얼마가서 甘露같은 물이 솟는마을 하이얀 회담벽에 옛적본의
장반시게를 걸어놓은집 홀어미와 사는 물새같은 외딸의 혼사말이 아즈랑이 같이 낀 곳은
- <南鄕> 가운데서.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느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주앉어 대구국을 끓여 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 <흰 바람벽이 있어> 가운데서.
아래 시들은 백석이 통영으로 그녀를 만나러 가면서 지나다닌 창원과 고성에서 지은 시들입니다.
창원도(昌原道) ― 남행시초(南行詩抄) 1
솔포기에 숨었다
토끼나 꿩을 놀래주고 싶은 산허리의 길은
엎데서 따스하니 손 녹히고 싶은 길이다
개 데리고 호이호이 회파람 불며
시름 놓고 가고 싶은 길이다
궤나리봇짐 벗고 땃불 놓고 앉어
담배 한 대 피우고 싶은 길이다
승냥이 줄레줄레 달고 가며
덕신덕신 이야기하고 싶은 길이다
더꺼머리 총각은 정든 님 업고 오고 싶은 길이다
고성가도(固城街道) ― 남행시초(南行詩抄) 3
고성(固城)장 가는 길
해는 둥둥 높고
개 하나 얼린하지 않는 마을은
해발은 마당귀에 맷방석 하나
빨갛고 노랗고
눈이 서울은 곱기도 한 건반밥
아 진달래 개나리 한창 피었구나
가까이 잔치가 있어서
곱디고운 건반밥을 말리우는 마을은
얼마나 즐거운 마을인가
어쩐지 당홍치마 노란저고리 입은 새악시들이
웃고 살을 것만 같은 마을이다
이렇게 첫사랑의 아픈 기억을 지닌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 여고에서 영어교사로 생활하게 되는데 그때 또 한번의 불같은 사랑을 하게 됩니다.
두번째.. 어쩌면 백석이 죽을때까지 간직했을지도 모를 사랑은 바로 법정스님이 계셔던 길상사의 원래 주인이었던 길상화-김영한 입니다.
백석의 두번째 사랑, 진향 - 김명한(길상화), 그리고 길상사에 남아 있는 그녀의 공덕비
'진향'이라는 기명을 지녔던 그녀 '자야'는 조선의 마지막 기녀였습니다. 그녀와의 사랑은 경성을 떠들석하게 할 정도였지만, 집안과 주변의 반대로 헤어짐과 만남을 반복합니다. 불 같았던 사랑은 시인으로 하여금 집안에서 정해준 사람과 결혼하고도, 학교를 때려치우고 그녀를 찾아 떠나오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자야'는 시인이 그녀에게 붙여준 이름이었다고 합니다.)
시인은 그녀에게 모든 것을 버리고 함께 떠나자고 하지만 그녀는 그를 위해 거절을 하게 되고, 3년간 불같은 사랑을 이어오던 백석은 이루지 못 할 사랑을 안고 혼자서 만주로 떠나 몇년을 떠돌아 다니게 됩니다. 그때 쓴 시가 백석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입니다. 여기서 나타샤가 바로 그녀 '자야'였죠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燒酒)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이렇게 사랑했던 그녀는, 백석이 북으로 간 후 평생을 혼자 살았습니다. 그녀의 요정은 70년대까지 우리나라 최고의 요정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법정스님의 '무소유'라는 책을 본 후 당시 2천억이 넘었다는 전 재산을 내놓으며 사찰로 만들어 달라고 하지요.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곳이 바로 '맑고향기롭게' 근본도량 '길상사'입니다. (원래 우리나라 최고의 요정였던 '대원각' 터에 세워진 것이지요.) 법정스님에 의해 불교로 귀의한 그녀가 받은 법명이 바로 길상화였으니 말입니다. 그녀는 그곳 길상사에서 백석을 그리워하며 남은 여생을 조용히 살다가 갔습니다. 그때 그녀가 쓴 책이 바로 '내사랑 백석' 이었고, 그녀의 재산 일부분을 내어 만든 문학상이 바로 지금도 권위있는 상으로 불려지는 '백석문학상'입니다.
성모상을 닮은 길상사의 관음보살상
길상사 개산(開山) 당시 천주교신자인 조각가 최종태가 만들어 봉안한 석상. 종교간 화해의 염원이 담긴 관음상입니다.
* 뱀다리 : 전 마산을 참 좋아합니다. 문향(文鄕) 또는 예향(藝鄕) 으로 불리는 것이 부끄럽지 않을정도로 많은 문인들과 예인들을 배출한 고장이어서인지 골목길 구석구석, 바닷가 어느 틈에서도 시인의 이야기와 예술가들을 삶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 중 가장 좋아하는 곳이 바로 '마산문학관'입니다. 고즈넉한 분위기도 그렇고... 마산을 거쳐간 시인들과 문인들을 한 눈에 볼 수 있었서도 그렇죠. 시간이 있을때 한번 구경가보세요. ^^ (단, 책을 별루 안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무지 별 볼일 없는 곳일 수도 있습니다.ㅋㅋ)
● naver cafe/ttldance 2010.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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