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고느리게

오랫만의 남도길(2) 무거워진 몸을 끌고 나섰던 진남관과 흥국사 본문

길을나서다

오랫만의 남도길(2) 무거워진 몸을 끌고 나섰던 진남관과 흥국사

soeasy 2012. 8. 7. 15:36

전날 여수엑스포장에서 쬐었던 뜨거운 햇살과 그 보다 더 텁텁했던 공기가 주는 피곤함이 몸에 스며들었나보다. 아침에 일어난 일행들의 몸이 무거워 보인다. (하긴 전날 밤새도록 카드 놀이를 했으니... ) 


남도, 여수쯤 가게되면 마음은 이미 그 보다 더 서쪽으로 향한다. 보성, 영암, 나주, 진도...그리고 보길도까지... 마음은 이미 서쪽 바다까지 가 닿아있지만, 무거워진 몸과 일행들이 주는 무게가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혼자 갔더라면... 하고 생각해 봤다. 아마도 밤에 잠을 자지않고 진도까지 한달음에 내 달았을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발걸음을 여수에서 멈추기로 했다. 피곤함에 젖은 일행들의 안전을 위해 근처를 돌아보기로 한다. 여수 하면 생각나는 것들을 물어봤다. 향일암... 여수엑스포.. 에서 생각들이 멈춘다.  그래 사람에 따라 다르다. 여수에 대한 감성이 남다르다면 기억에 남은 그녀 또는 그가 생각날지도 모르고 더불어 버스커버스커의 여수밤바다가 떠 오를지도, 또 음식에 대한 정취가 남다른 사람들이라면 여수 갓김치나 하모 유비끼, 서대회와 군평 서니, 게장 정식 같은 것들이 생각날지 모르고, 나 같은 사람들이라면 진남관이나 향일암 그리고 흥국사등이 생각날 것이다.   


일어나 출발 준비를 하고나니10시다. 향일암은 화재사건도 있었고, 일행들의 체력(?)때문에 다음에 가 보기로 한다. 오동도는 엑스포 앞이라 교통혼잡 때문에 피하기로 했다. 그렇게 정해진 첫번째 장소가 바로 진남관이다. 

 

 

 

 


진남관은 국보 304호로 1958년(선조31년) 전라좌수영의 객사로 건립한 건물로 약 400여년간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승리로 이끈 조선 수군의 중심기지 역활을 한 곳이다. 현재의 건물은 1718년(숙종44년)에 중창한 것으로 정면 15칸, 측면 5칸, 면전 240평의 크기로 현존하는 관아 건물로는 최대 규모이다.   이 크기는 궁전의 행랑이나 종묘의 정전을 제외하고는 해인사의 경판고와 진남관 두 곳 뿐인 규모이기도 하다. 



꽤 이른 아침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진남관을 찾고 있었다. 진남관에서 마주 보이는 돌산대교를 바라보며 바닷바람을 쐬면서 한참을 쉬었다.



아침부터 흩날리던 비가 조금 잦아들었다. 시각은 11시가 조금 넘어가고 있었다. 일단 아침과 점심을 겸한 식사를 한 후  다음 갈 곳을 정하기로 한다. 점심은 여수여객항 앞 시장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군평서니, 서대회가 전문인 곳이다. 11시가 조금 넘었는데 자리가 없는 것을 보니 엑스포 특수인가보다. 서대회로 끼니를 해결하고 여수에서 가장 큰 사찰인 흥국사로 향했다.


 

흥국사는 여수산단을 가로질러 한참 안 쪽으로 들어가 있다. 길 양쪽으로 가득한 공장굴뚝들을 지나가다 산단 중간쯤에서 산 쪽으로 한참을 거슬어 올라가면 그 속에 자리잡고 있다. 고려시대인 1195년(명종 25)에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이 창건했다는 이곳은, 흥국(興國)이라는 이름처럼 호국과 비보사찰(裨補寺刹)의 성격을 띠고 있는 곳이다. 때문에 창건 이후 임진왜란때에는 승군의 수군지휘부가 있었고 임진왜란이 끝난 뒤까지 약 300여년간 의승수군지휘소로서의 역활을 한 곳이라도 한다. 

 

 

 

 

흥국사는 보물 9점(대웅전 제396호, 홍교 제563호, 대웅전 후불탱화 제578호, 노사나불괘불탱화 제1331호, 수월관음도 제1332호, 십육나한도 제1333호, 목조석가여래삼존상 제1550호, 강희4년 명동종 제1556호, 목조지장보살삼존상, 시왕상일괄및복장유물 제1566호)이고, 도지정문화재 4점(원통전 제45호, 팔상전 제258호, 삼장보살도 제299호, 제석도 제300호)과 그 외 문화재 자료 800여 점과 건물 25동을 보유하고 있는 곳이다. 


 

 

 

임진왜란때 흥국사의 거의 모든 건물들이 소실 된 후 송광사 대웅전의 설계도를 이용하여 이 곳 흥국사의 대웅전을 다시 지었다고 한다. 그 후 삼보사찰 중 하나인 인근의 송광사 대웅전이 6.25전쟁 시 소실되어 없어지게 됨으로써 옛 송광사 대웅전을 알고자 하면 흥국사 대웅전을 보라고 한다. 때문에 흥국사 대웅전은 목조건물로서 규모는 작지만 예술적인 면은 전국적으로 대표적인 건물이다. 


 

 

 


바다와 인접해 있는 사찰의 특징인지, 또는 불교의 고해를 가로지르는 반야용선의 표현인지 몰라도 흥국사에는 바다와 관련된 조각들과 문양이 여기저기 숨어있다. 윗 사진은 대웅전 기단부의 게 조각, 아래는 대웅전 정면 계단 양쪽 소맷돌을 장식하고 있는 용 조각들.  


 

 

 

 

 


흥국사 심검당을 제외한 전 사찰건물이 임진왜란시 전소되어 그 후 370여 년 전 송광사 대웅전을 중건하고 그 설계도면으로 41명의 목수수군스님(불벽에 각각 법명이 적혀져 있음)들이 3년간 1000일기도를 드리며 대웅전 중건 불사를 하면서 "누구든지 이 대웅전의 문고리를 한번만 잡아보아도 소원성취를 하고 3악도(지옥 ·아귀·축생)의 환생을 면하고 그경에는 성불하도록 하여 주소서" 하는 원력과 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흥국사를 찾아오는 관광객들이 문고리를 잡아보고 간절한 마음으로 소원을 빌고 간다고 한다.


 

 

 

보물 제578호 대웅전 후불탱화  


 

 

대웅전 천정을 장식하고 있는 화려한 문양과 조각들


 

 

대웅전 앞 석등, 기단을 형성하고 있는 이수가 너무 귀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