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고느리게
오랫만의 남도길(3) 어수선한 느낌이 강했던 선암사 본문
점심도 먹고 계곡에서 잠시 쉬었기때문일까 몸이 가벼워 진 것 같다. (혼자만의 생각일지도.. ^^;) 가장 가까운 선암사를 들른 후 창원으로 가기로 하고 출발한다. 오래전 대규모(?) 답사팀과 함께 들렀었던 선암사. 많은 시간이 흘러서인지 낯설다. 그때는 꽤 정갈한 느낌이 들었었는데 지금은 왠지 모르게 어수선한 느낌이다. (아마도 그 이후로 들려왔던 선암사를 둘러싼 소유권 분쟁들이 머리 속에 남아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가진 선암사에 대한 기억은 휘어진 문설주와 대문간, 단청 없는 수수한 건물들과 넓은 차 밭 사이에 숨겨놓은 보물처럼 들어 앉아있던 돌확과 찻주전자, 그 위를 장식하던 빨간 매화가 차분한 동양화처럼 연결되던 곳이었는데...
선암사를 이야기 하자면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차다. 통일신라때 도선국사가 차를 처음 가져와 일주문 주변에 심었다고 하는 데 그 후 고려 대각국사 때는 차 밭을 만들고 여기서 나온 차를 중국 송나라에 수출까지 했다는 기록이 있어 우리나라 최초의 차를 재배한 곳으로 이름을 올려 놓고 있기도 하다. 현재도 이 곳 차밭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차나무가 있으며, 이 나무에서 딴 차는 최상품으로 치기도 한다.
선암사 돌확
찻물을 내리던 곳으로, 처음엔 네모나던 것이 점점 둥글어지듯 진리를 향한 깨닭음을 뜻하는 모양으로 되어 있다. 이곳에 매화가 필때의 정경이란...... 오래 전 처음 이곳에 들어가 본 후 오랫동안 봄이면 꿈에서조차 보일 정도였다.(선암사의 매화는 선암매라 따로 불릴 정도로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선암사로 오르는 길은 울창한 편백나무 숲길과 계곡으로 이어진다.
선암사 부도전
선암사 강선루 선암사를 오르는 길은 울창한 숲과 계곡을 따라 이어진다. 약 1Km 쯤 되는 거리를 걷다보니 땀이 절로 흐른다. 그렇게 한 참을 거슬러 오르다보니 신선이 내려올 정도로 아름답다는 강선루를 만난다. 그리고 강선루를 지나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 중 하나로 꼽히는 승선교가 있다. 승선교 아래를 흐르는 계곡물은 마침 내린 소나기로 푸르도록 시린 빛을 띠고 흐르고 있었다. 승선교에서 잠깐 땀을 식히고 다시 오르막을 오른다. 선암사승선교(仙岩寺昇仙橋)는 보물 제400호로 길이 14m, 높이 4.7m, 폭 4m로 조선 숙종 39년(1713) 호암화상이 6년 만에 완공한 다리이다. 기저부(基底部)에 별다른 가설이 없고 홍예(虹預)는 하단부부터 곡선을 그려 전체의 문양은 반원형을 이루고 한 개의 아치로 이루어졌다. 다리 중심석 아래의 조그맣게 돌출시킨 석재는 용의 머리 같기도 하다. 고통의 세계에서 부처의 세계로 건너는 중생들을 보호 수용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약간 비탈진 길을 올라서면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이 둥근 알을 현상화 했다는 천연기념물 4호로 지정된 삼인당(三印塘)이라는 연못이다. (삼인(三印) : 불교의 기본교리 중 하나로 제행무상인(諸行無常印), 제법무아인(諸法無我印), 열반적정인(涅槃寂靜印)의 3법인을 말하며, 이는 모든 것은 변하며 머무르는 것이 없고, 모든 존재 또한 고정된 실체가 아니기 때문에 열반적정의 진리를 찾기를 강조하는 불교사상을 나타낸 것으로, 이러한 양식은 우리 나라에서는 선암사에만 존재한다고 한다. ) 선암사는 527년 백제성왕 5년에 아도 화상이 청량산 해천사(海川寺)라 이름을 짓고 설립한 곳으로 1,5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다. 현재의 이름인 선암사는 신라 말기인 경문왕 2년(862년)에 도선국사가 절 뒤쪽에 선암이 있는 것에 따라 절 이름을 선암사로 고쳤으며, 비보사찰 가운데 하나로 삼았다고 한다. 선암사의 문화재는 보물 제395호 삼층석탑, 보물 제955호 삼층석탑 사리장엄, 보물 제1117호 대각 부도, 보물 제1184호 북부도, 보물 제1185호 동부도, 보물 제1311호 대웅전 등이 있고 성보박물관에는 약 1800여점의 불교관련 문화재를 봉ㅍ하고 있기도 하다. 이외에도 선암사는 범패(梵唄), 재(齎), 염불, 복색 등 우리나라 불교의 고유양식을 가장 많이 간직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때문에 '아제아제 바라아제', '만다라' 등 불교영화의 촬영지로 자주 이용되기도 하고 있다. 선암사는 태고종 총림이다. 총림(叢林, vindhyavana, 의역-빈타나타貧陀婆那, 단림, 승가(僧家), 승림(僧林), 총림(叢林))은 불교 교단에서 선원, 강원, 율원을 모두 갖춘 곳으로 우리나라의 총림은 조계종 5대총림(조계, 영축, 가야, 덕숭, 고불)과 태고종 1개 총림등 모두 6개가 있다. 태고종은 현재 한국불교의 대표종단인 조계종과 뿌리를 같이 하는 곳으로 일제 강점기 해방 후 조계종과 분리되어 현재에 이른다. 때문에 해방 이전의 불교 종단 재산권을 둘러싸고 조계종과 마찰이 계속 되고 있기도 하고, 이 곳 선암사는 그 대표적인 분규 사찰이기도 하였다. 태고종은 조계종과 교리를 표현하는 주 경전인 소의경전이 동일하지만 승려의 결혼을 허용하는 대처승 제도에 있어 차이가 있다. 이 대처승 제도는 일제의 전통불교 말살 정책에 의한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고, 때문에 1950~60년대 불교종단의 정통성을 따지는 분규에서 주된 쟁점이 되었으나, 법원에 의해 불교의 정통성은 대처승이 아닌 출가승에 있다는 판결로 현재의 조계종 종단이 불교의 대표 종단이 되는 계기가 되었다. (계기가 되면 한국의 현대 불교사에 중요한 역활을 한 문경 봉암사 결사에 대해 포스팅을 해 보겠다. - 봉암사에 한번 다녀와야 할텐데.. ^^' ) |
선암사는 3가지 없는 '삼무(三無)' 사찰이라고 했었다. 그것은 조계산의 주봉이 장군봉이라 장군이 지켜주기 때문에 불법의 호법신인 사천왕상을 굳이 만들 필요가 없다고 하여 천왕문이 없고(풍수지리에 능했다는 도선국사의 영향일 것이다.) '개구즉착(開口卽錯)' 즉 '입을 열면 어긋난다.'고 하여 깨달음에는 말이 필요 없다는 뜻에서 주련(사찰의 기둥등에 붙여 있는 불교의 교리나 깨닭음을 나타내는 글귀들)을 달지 않았다고 하여 주련이 없고, 대웅전에 어간문(대웅전의 정중앙에 있는 문으로 다른 사찰에는 정중앙의 문에도 사람이 출입이 가능하지만 선암사에는 부처님처럼 깨달은 분만이 이 어간문을 통하여 통과할 수 있다고 하여 어간문을 만들지 않았다고 한다)이 없다는 것인데 어수선한 절집의 분위기 때문인지 무엇하나 제대로 맞춰진 것이 없어 보인다.
선암사에서 대중적(?)으로 가장 유명한 곳 중 하나인 뒷간, 일설에 정월초하루에 볼일을 보면 보름날 소리가 들린다는 이야기가... (이런 이야기가 있는 걸 보면 진리를 위해 공부한다는 스님들도 경쟁심을 버리긴 힘들었는지도... ^^ )
내려오던 길에 만난 선암사 계곡의 시리도록 푸른 물. 물이 너무 차서 물안개가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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